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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나는 채식을 시작한 게 아니에요.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채식주의자』는 그렇게, 한 여자의 평범하지 않은 결심에서 시작된다. 고기 섭취를 거부한 뒤 벌어지는 삶의 균열, 한 사람의 변화가 주변 인물들에게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지를 강렬하게 그려낸 이 소설은 단순한 채식 이야기가 아니다. 존재에 대한 질문, 육체와 정신의 경계, 사회가 규정한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충돌을 다룬 문학적 실험이자 심리적 투시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어디인가 묻게 된다
사회적 역활 안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어느순간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영혜가 나무가 되고 싶다는 바람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
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지만 결국 본질은 하나이다
육식은 폭력을 상징하고 나무는 비폭력을 상징한다
폭력은 어떤 것이든 정당화 될수 없다. 이 책은 스스로 망가지면서도 폭력에 저항하는 인간의 이야기 이다
누구나 폭력을 경험할 수 있고 희생자가 될 수 있다
🌿 평범한 선택이 비정상이 되는 사회
주인공 영혜는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유는 단 하나. “꿈을 꿨다.”
하지만 이 단순한 결심은 가족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반란이자 이상 징후로 여겨진다. 아내가 채식을 한다는 이유로 당황하는 남편, 그녀를 강제로 고기를 먹이려 하는 아버지, 점점 쇠약해지는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묘한 해방을 느끼는 언니.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사실 영혜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영혜의 선택은 결코 이성적이지 않다. 그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꿈을 꾸고, 고기를 거부하고, 점점 인간의 껍질을 벗고 나무가 되려 한다. 그녀의 몸은 말라가지만, 마음은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정상'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누가 기준을 만들었고, 왜 우리는 그 기준을 따라야만 하는가?
🌳 “그녀는 나무가 되고 싶었다.”
『채식주의자』는 총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영혜의 남편, 형부, 언니의 시점에서 영혜를 바라본다. 이 방식은 독자에게 깊은 심리적 몰입을 안긴다. 특히 두 번째 파트에서 형부와 영혜 사이에 벌어지는 예술이라는 이름의 도발은 문학적 쾌감과 불쾌감을 동시에 선사한다. 형부는 영혜의 몸에 꽃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예술적 욕망과 성적 판타지를 투영한다.
그의 눈에는 영혜가 인간이 아니라 '순수한 존재'로 비춰진다. 영혜는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점점 나무에 가까워지고, 그렇게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난다.
🥀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괴물이 되기로 했다.”
가장 강렬한 문장은 이 대목에서 나온다. 이 대사는 『채식주의자』가 단순히 채식이라는 소재를 넘어, 여성의 억압, 사회의 폭력, 인간 존재의 고통까지 짚어낸다는 걸 보여준다.
영혜는 피해자로 살기보다, 세상의 기대를 깨는 괴물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독자에게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정말 미친 건 그녀일까, 아니면 그녀를 미쳤다고 말하는 우리일까?’
✨ 이 소설이 주는 진짜 감동
한강의 문체는 간결하면서도 시적이다.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그 여백에서 상처와 감정을 읽게 만든다. 무미건조한 남편의 시선, 예술이라는 이름의 욕망, 가족이라는 이름의 억압. 영혜는 하나도 말하지 않지만, 모든 인물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점점 선명해진다.
『채식주의자』는 읽는 이를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곧 사유로 이어진다. “나는 왜 이 장면에서 불편했을까?”, “내가 영혜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반응했을까?”, “나는 내 욕망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은 소설이 끝난 뒤에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 “그녀는 결국 뿌리를 내리게 될까?”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당신은 아마도 그렇게 묻게 될 것이다. 영혜는 자유를 얻었을까, 아니면 끝내 고립됐을까?
📖 생각할수록 깊어지는 소설. 당신의 내면에도 ‘영혜’가 있는지, 지금 한 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